다사다난했던 2024년 갑진년(甲辰年) 한 해가 저물고 2025년 을사년(乙巳年) 한 해가 시작됐다. 또 다시 아쉬움 속에서 한 해를 보내면서 지난 2024년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해가 있었을까 되새겨본다. 그 어느 해보다 굵직한 사건사고가 줄을 이었고 정치권은 물론 경제·사회·문화 등 수많은 변화와 갈등을 겪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돼 국회에 계엄군이 진입했고,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그 여파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물망에 올라 향후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격한 대립으로 국민들의 피로감은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정치인들의 잇따른 피습사건, 딥페이크 사건, 화성 리튬배터리 화재 사건 등 각종 사건 사고도 잇따랐다. 대외적으론 북한의 러·우 전쟁 참전으로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그 파장이 거셌으며, 미국의 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귀환’하기도 했다. 소설가 한강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아 ‘K-컬처’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계엄 후폭풍] 지난 12월3일 오후 10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담화가 발표됐다. 연이은 정부 관료 탄핵과 입법·예산안 강행 처리 등 거대 야당의 독재·폭거에 맞서 국가 정상화 수단으로 계엄이 필요하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주장이었다. 계엄군은 국회로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 및 국회 보좌진과의 격렬한 대치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민 약 1000여 명이 국회 앞에 집결해 “비상계엄 철폐”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회는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 계엄군의 철수를 강력히 요구했고, 계엄군은 국회 경내에서 전원 철수했다. 45년 만에 선포한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비상계엄 사태는 대한민국을 뒤흔들었고 대다수 국무위원과 참모의 반대에도 계엄을 강행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결국 윤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12월 14일 국회에서 찬성 204표로 가결되면서 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 1승1패] 열흘 만에 연속으로 1심 재판 선고 두 번을 받게 된 이재명 대표. 지난 11월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이 대표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을 받은 바가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정치적인 타격이 무척 컸던 이 대표지만 이번 ‘위증교사’ 의혹 사건 1심 재판 선고가 예상을 뒤엎고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공직선거법 유죄 판결 이후 당내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하고, 여권을 향해 투쟁 강도를 높이는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말끔히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위례신도시 개발, 대장동 등 개발 비리 혐의 재판과 불법 대북송금 혐의 사건 재판은 아직 1심 재판이 절반도 이뤄지지 않았거나 본 재판(공판)은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이번 두 번의 재판 선고 외에도 진행중인 재판들 대부분이 무죄가 아니면 유죄를 선고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인데, 이제 막 선고를 받기 시작한 사건들이 유죄와 무죄를 선고 받았음에도 다른 재판들에 대한 부담이나 불안감은 당연히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 일각의 해석이다. 향후 재판 중 유죄 선고가 많아진다면 피선거권 박탈이 예상되는 상황에다 이재명 대표 본인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타격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재선 성공 ‘트럼프의 귀환’] 지난 11월 치러진 미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완승을 거두고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 전 대통령. 초박빙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경합주를 모두 우세하며 4년 만에 백악관으로 귀환한다. 유세 도중 피격돼 피를 흘리는 등 두 차례의 암살 시도를 비롯한 중대 고비를 잇달아 넘기며 극적으로 재기한 트럼프는 만 78세에 취임하게 돼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이라는 역사도 새로 쓰게 됐다. 첫 임기 때에도 ‘미국 우선’을 강조하던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2기엔 미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더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북한군, 러·우전쟁 파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에 북한군의 파병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주를 기습 점령한 상황에서, 북한이 위기에 빠진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1만 명 이상의 특수부대를 파병한 것. 국제사회의 거듭된 의혹 제기에도 침묵하던 북한은 “우리 군대의 대러시아 파병설에 유의하였다”며 “그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일 것”이라고 밝혀 파병을 사실상 시인했다. 북한군은 격전을 치르고 있는 전방에 배치됐고 일부 사상자도 발생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직후 종전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자, 과거 6.25전쟁과 비슷하게 영토를 한 뼘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의대증원, 의정 갈등 최고조] 윤석열 정부는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현재보다 2000명씩 늘려 2031년부터 2035년까지 의사 1만 명을 추가 배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사 수 부족으로 필수의료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서도 의료계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던 의대 증원이 27년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의사들의 반발은 거셌다. 전공의들은 집단 사직으로, 의대생들은 집단 휴학으로 맞섰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자 진료와 수술이 일제히 줄었고, 한때 주요 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평시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국민들의 피로감은 극심해졌고, 피해는 환자의 몫이었다. 의정 갈등과 사상 초유 의료대란 후유증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화재·폭발·역주행…대형사고 충격] 2024년은 대형 사고가 잇따르면서 안전불감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경기도 화성의 리튬배터리 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나 23명이 숨졌고 8명이 다쳤는데, 산업현장의 대응이 미비하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됐다. 차량 역주행 사고도 빈번했다.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발생한 차량 역주행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 한가운데에서 예측 불허의 사고로 평범한 시민들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어 사회적 충격이 컸다. 이밖에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 현상까지 낳았으며, 부천시 호텔 화재 참사는 투숙객 7명이 죽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수사 결과 열려 있던 방화문, 경보기 작동 임의 차단, 간이완강기 미비치 등 부실한 소방 시설 관리와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재명·배현진 정치인 피습]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두 정치인이 3주 간격으로 습격당한 사건도 있었다. 이재명 대표는 부산 방문 도중 김모 씨가 20∼30cm 길이 흉기를 들고 왼쪽 목 부위를 공격해 피를 흘리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배현진 의원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에서 15세 중학생에게 돌덩이로 머리를 15차례 가격 당했다. 이 학생은 폭행 직전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죠?”라며 신원을 확인한 후 폭행했고, 배 의원은 두피를 1㎝가량 봉합했다. 정치인이 잇따라 피습에 노출되자 정치권 안팎에선 정치의 양극단화와 이를 악용한 혐오 정서가 이런 위험을 더 키우는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딥페이크 범죄와의 전쟁 선포] 타인의 얼굴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유포 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나날이 발전하는 AI를 이용한 기법으로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주로 딥페이크 범죄가 벌어졌고 피해자들은 학생, 교사, 교직원 등이 대다수였다. 이에 정부는 딥페이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024 대중문화 핫이슈]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아시아 여성이 될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주요 후보로 언급되지 않았던 한강이 선정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원한 일용엄니’ 배우 김수미와 ‘아침이슬’ 가수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고, 배우 정우성은 혼인 없이 아빠가 된 사실이 알려졌다. 가수 김호중은 음주 뺑소니 사고로,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는 음주 상태로 전동 스쿠터를 몰아 논란이 됐다.
[뜨거웠던 파리올림픽 ‘성공적’] 2024 파리올림픽이 17일 간의 여정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48년 만에 최소 인원을 파견한 한국 대표팀은 역대 최고인 금메달 13개를 획득했다. 우리나라 메달밭이라고 불리는 종목들이 이번 대회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면서 거둔 성적이다. 올림픽 메달에 대한 여론도 변화했다. 이전 올림픽은 금메달이 아니면 무관심한 분위기에서 메달 색깔과 상관없이 모든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축하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변화했다. 특히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더라도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태극마크를 가슴에 걸고 나선 우리 선수 모두가 존경스럽다는 반응도 잇따랐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32개 메달과 종합 8위라는 역대급 순위를 거둔 이유로 “천년의 역사 동안 전쟁을 치룬 우리 민족에게 손에 무기를 쥐어주면 실력 발휘를 900%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꼽기도 했다.